1. 당뇨병의 예방은 가능한가?
혈당검사를 해보면 당뇨병이라고 할 만큼 혈당이 높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안심할 정도로 혈당이 낮지 않은 경우가 상당히 많다. 예를 들어 공복혈당이 정상보다 높은 110mg/dl로 측정되거나 식후 2시간 후에 혈당검사를 했는데 정상보다 높은 145mg/dl 이상으로 측정되는 경우인데 이처럼 정상 혈당보다는 높고 당뇨병보다는 낮은 혈당 수치의 범위를 ‘전당뇨병’이라고 한다. 말 그대로 당뇨병의 전 단계라는 뜻이다. 전당뇨병 진단을 받은 사람들은 대개 두 가지 반응을 보인다. “어쨌든 당뇨병은 아니지 않느냐”며 안심하는 경우와 “그럼 곧 당뇨병에 걸리는 것이냐”며 걱정하는 경우다. 두 가지 반응은 모두 맞기도 하고 틀리기도 하다. 전당뇨병이 당뇨병이 아닌 것은 맞지만 혈당조절 능력에 문제가 있다는 신호이기 때문이다. 이는 그만큼 당뇨병 발생 위험 군에 속한다는 뜻이기도 하고 반대로 예방을 잘 하면 당뇨병에 걸리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는 뜻이기도 하다. 전당뇨병 단계에서 당뇨병으로 진행되기까지 걸리는 시간은 개인차가 있기는 하지만 5 – 10년 정도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기간에 혈당조절 능력이 회복되도록 노력하면 당뇨병으로까지 진행되지 않거나 진행 속도를 늦출 수 있으므로 당뇨병을 예방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라고 할 수 있겠다. 이 기회마저 놓치면 당뇨병으로 진행될 확률이 50-70%에 달하고 일단 당뇨병이 발생하면 완치할 방법이 없다.
전당뇨병의 진단 역시 공복혈당과 식후 2시간 혈당을 측정해서 판단한다. ①이때 공복혈당이 100 - 125mg/dl이고 식후 2시간 혈당은 정상수치인 140mg/dl 미만이면 공복혈당장애로, ②반대로 식후 2시간 혈당이 140 - 190mg/dl이면서 공복혈당은 정상수치인 100mg/dl 미만이면 내당능장애로 진단한다. 당뇨병이라면 공복혈당도 126mg/dl 이상 식후 2시간 혈당도 200mg/dl 이상으로 공복혈당과 식후 2시간 혈당 모두 혈당조절능력이 떨어지지만 전당뇨병 단계에서는 공복혈당 또는 식후 2시간 혈당에만 문제가 나타나는 경우가 많은 것이다.
(1) 공복혈당이 정상보다 높다는 것은 밤사이 혈당이 지나치게 떨어져 간에서 당을 과도하게 만들어내고 있다는 증거다. 우리 몸은 혈액 속의 당 농도가 0.1% 이상이 되면 남아도는 당을 글리코겐으로 간에 저장했다가 혈액내의 당의 농도가 떨어졌을 때 글리코겐을 다시 당으로 분해해 혈액 속으로 내보냄으로써 늘 일정한 당농도를 유지하도록 한다. 그런데 혈당조절 능력에 이상이 생기면서 공복에는 당농도가 지나치게 떨어지고 이를 보상하기 위해서 간에서 분비되는 당이 높아지게 되면 당은 쉽게 정상수치로 회복되지 않는 사태가 발생하게 된다. (2) 또 공복혈당은 정상인데 식후 2시간 혈당이 높다는 것은 인슐린저항성이 있거나 췌장 베타세포의 인슐린 분비 기능에 문제가 있다는 뜻이다. 이처럼 공복혈당이나 식후 2시간 혈당이 높아지는 원인은 다소 차이가 있지만 어느 쪽이든 혈당조절 능력에 문제가 생기기 때문이다. (3) 이외에도 전당뇨병 단계에서 공복혈당과 식후 2시간 혈당 모두 제대로 조절되지 않는 경우가 있는데 공복혈당장애와 내당능장애가 복합돼 있다고 해서 복합장애라고 한다. 이 경우는 공복혈당장애나 내당능장애만 있을 때보다 당뇨병 발생 위험이 더 높아질 수 밖에 없다. 그만큼 혈당조절 능력이 더 많이 떨어져 있음을 반영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어떻게 보면 전당뇨병 진단을 받는 것은 그나마 행운이라고 할 수 있다. 매년 50만명에 달하는 사람들이 새로운 당뇨환자로 판명되는 현실에서 그나마 예방할 수 있는 시간을 버는 셈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당뇨병 예방에 신경을 쓰고 생활습관을 개선함으로써 당뇨병 발병 위험이 없을 때보다 오히려 더 건강한 삶을 영위할 수 있다. 따라서 공복혈당장애나 내당능장애 또는 복합장애가 있다는 진단을 받는다면 남은 시간이 충분하다는 생각으로 이러한 문제를 그대로 방치하지 말고 즉시 혈당관리를 시작하는 것이 현명하다.
이렇게 전당뇨병 단계에서 혈당관리를 잘 해서 5 - 10년이 지난 후에도 당뇨병이 발병하지 않고 건강하다면 안심해도 될 것인가? 그렇지는 않다. 혈당관리를 잘하면 당뇨병 발병위험이 상당히 낮아지는 것은 사실이지만 위험요소가 아예 없어지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보통 전당뇨병 단계에서도 췌장의 베타세포가 50% 이상은 이미 소실되어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현대의학으로는 소실된 췌장의 베타세포를 되살릴 방도는 아직 없다. (그러므로 당뇨병을 어떤 약물이나 특별한 방법으로 완전히 낫게 할 수 있다는 말은 아직까지는 신빙성이 전혀 없으며 이런 방법에 의존하려는 것은 오히려 위험한 것이므로 특별히 주의를 요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당뇨병 단계에서 당뇨병을 예방할 수 있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은 췌장의 베타세포가 더 이상 손상되거나 소실되지 않도록 주의하고 인슐린저항성을 낮춤으로써 혈당조절 능력을 회복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남아 있는 췌장의 베타세포를 지키기 위해서는 인슐린을 과도하게 필요로 하는 생활습관을 개선해야 한다. 혈당을 높이는 식습관을 반드시 바꿔야 하고 인슐린저항성을 높이는 모든 요소들을 제거함으로써 췌장에 무리가 되지 않도록 하는 것이 아직까지의 유일한 방법이라는 것을 명심하자.
이를 통해서 혈당조절 능력이 회복되면 당뇨병이 발병하지 않겠지만 전당뇨병 단계를 무사히 넘겼다고 해서 다시 인슐린을 과도하게 필요로 하는 생활로 돌아간다면 당뇨병 발병위험은 언제든 다시 찾아올 수 있다. 10 -20년 후, 또는 그보다 늦게도 당뇨병이 발생할 수 있고 나이가 들수록 당뇨병에 걸릴 위험도 높아지므로 건강한 생활습관과 꾸준한 혈당관리는 지속적으로 해야 한다는 것을 명심하자.
2. 당뇨병환자가 아니어도 합병증은 올 수 있는가?
한 환자의 예를 보자. 종합검진 과정에서 공복혈당이 122mg/dl, 식후2시간 혈당이 176mg/dl로 공복혈당장애와 내당능장애가 함께 발견된 40대 중반의 환자에게 당뇨병이라고 알려 주자 “당뇨병 초기면 심각한 것은 아니죠?”라며 그나마 다행스러워했다. 그러나 합병증 검사에서 이미 망막이 손상되고 있음이 드러났다. 최근 눈이 부쩍 침침해졌지만 노안이 온 탓이라고 여겨 그리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았다는 그는 당뇨병 초기에 벌써 망막합병증이 동반되어 있다는 사실에 무척 당혹스러워했다. 어떤 질환이든 초기에 발견하면 증상이 심각하지 않고 완치율도 높은 것이 사실이지만 당뇨병만은 예외다. 보통 혈당조절에 이상이 생기면 혈당이 점진적으로 높아지는 것이 아니라 혈당관리 상태나 건강상태에 따라 혈당이 오르락내리락 하기 때문이다. 또 당뇨병환자라고 할 만큼 혈당이 높지 않더라도 정상보다 높은 수치의 혈당이 혈관 속을 지속적으로 흐르면,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혈관은 손상될 수밖에 없다. 이 때문에 아직 당뇨병도 아닌 전당뇨병 단계에서도 합병증이 발견되는 예가 드물지 않은 것이다. 실제 전당뇨병 진단을 받는 환자의 10%에서 당뇨병성 망막증이 발견되고 고혈압, 동맥경화, 심근경색, 협심증, 뇌졸증 같은 심혈관질환이 발견되는 경우도 상당히 많다. 건강한 사람이 심혈관질환에 걸릴 확률이 5% 정도라면 전당뇨병 단계에서는 15% 정도로 높아지고 당뇨병환자가 되면 30% 가까이 증가한다.
전당뇨병 단계에서 합병증이 발견된다고 해도 당뇨병이 발병하지 않도록 예방을 잘 하면 합병증은 더 이상 진행되지 않는다. 무엇보다 전당뇨병 단계에서 발견되는 합병증은 상태가 심각하지 않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치료효과도 상당히 좋은 편이기 때문이다. 혈당과 혈압을 정상수준으로 낮추는 것만으로도 시력을 회복할 수 있고 심혈관질환의 진행을 막을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전당뇨병 진단 후 “혈당이 조금 높을 뿐 아직은 괜찮다”며 방심하거나 “합병증은 당뇨병이 10년 이상은 되어야 생기는 것”이라며 안심해서는 안 된다. 혈당이 높으면 내 몸의 모든 혈관이 조금씩 손상될 수 있다는 사실을 명심하고 초기부터 적극적으로 대응해야 한다.
전당뇨병 진단을 받지 않았더라도 몸에 다른 이상이 있을 경우 반드시 당뇨병 발병 여부를 확인하는 것도 중요하다. 예를 들면 시력이 떨어졌을 때 단순이 ‘눈이 나빠졌다’거나 ‘노안이 온 것 같다’고 생각할 것이 아니라 당뇨병이 아닌지를 의심해 보고 혈압이 높을 때도 당뇨병이 원인이거나 당뇨병과 같은 동반질환이 있는지를 확인해 보아야 한다. 또 잇몸이 약해져 전반적으로 치아가 흔들리는 것도 당뇨병과 연관된 증상일 수 있다. 잇몸도 미세혈관이 지나가는 조직이기 때문이다. 이처럼 당뇨병은 신체 모든 부위에 합병증을 일으킬 수 있으므로 늘 당뇨병의 가능성을 염두에 두어야 조기에 당뇨를 발견할 수 있다. 당뇨병을 예방하는 최선은 어떠한 증상도 없을 때에 혈당조절 능력이 떨어지지 않도록 노력하는 것이고 차선은 전당뇨병 단계에서 당뇨병 발병 위험을 적극적으로 차단하는 것이다.
3. 전당뇨병 징후를 미리 알아 낼 수 있는가?
당뇨병은 특별한 자각증상 없이 진행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혈당이 아무리 높아도 고혈당으로 인한 증상이 나타나지 않는 예가 많기 때문에 정상혈당을 웃도는 정도의 전당뇨병을 자각증상으로 알아내기는 사실 불가능에 가깝다. 그렇다고 전당뇨병을 아예 예견할 수 없다는 말은 아니다. 당뇨병이 증상 없이 진행된다고 해도 혈당조절능력이 떨어지기까지는 건강 상의 다양한 원인이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혈당조절능력을 떨어뜨리는 원인은 전당뇨병 진단을 받은 환자들에게서 나타나는 공통적인 증상만 살펴보아도 충분히 파악할 수 있다. 예를 들어 (1) 공복혈당 118mg/dl, 식후 2시간 혈당 178mg/dl로 전당뇨병 진단을 받은 38세 남자환자의 경우 한눈에 판단할 수 있는 위험요소가 있었는데 이것은 비만이었다. 검사 결과 허리둘레는 90cm, 체질량지수(BMI) 29로 역시 비만으로 판명되었고 콜레스테롤과 중성지방 모두 과도한 상태였으며 혈압도 높았다. (2) 공복혈당 110mg/dl로 공복혈당장애를 진단받은 30세의 여자환자는 체중은 정상이었지만 역시 콜레스테롤 수치가 정상범위를 벗어나 있었다. (3) 45세 남자환자는 심각한 복부비만에 고혈압, 고지혈증 등이 동반되어 있었다.
이러한 소견은 전당뇨병은 물론 당뇨병으로 진단될 경우에도 거의 동일하게 발견되는 것들이다. 비만과 고지혈증, 고혈압, 인슐린저항성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해 우리 몸의 대사기능에 장애를 초래한다는 의미에서 이를 “대사증후군”이라고 한다. 실제 대사증후군이 있는 경우 당뇨병 고위험군으로 분류되므로 대사증후군은 당뇨병의 주요 징후라고 할 수 있다. 현재 우리나라 성인 인구 4명 중 1명이 대사증후군에 해당되는데 이는 최근의 당뇨병의 증가 추세를 설명하는 결정적인 증거라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당뇨병을 보다 효과적으로 예방하기 위해서는 대사증후군부터 예방하고 치료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그 밖에 나이가 많거나 가족력이 있는 경우에도 당뇨병 고위험군으로 분류되고 혈당의 평균치를 나타내는 당화혈색소(HbA1C)의 수치도 당뇨병의 발병 가능성을 판단하는 중요한 기준이 된다. 당뇨병의 징후로 볼 수 있는 또 하나의 위험요소는 임신성당뇨병이다. 임신 중 당뇨병이 발병했던 환자는 대개 출산과 함께 증상이 사라지지만 이후 다시 혈당이 높아지는 경우가 상당히 많기 때문이다. 따라서 당뇨병을 예방하기 위해서는 자신이 당뇨병 고위험군에 속하는지를 확인하는 것이 필요하다. 특히 ‘대사증후군’이 있거나 ‘임신성당뇨병’을 경험한 여성이라면 더욱 철저한 관리가 필요하고 평소 꾸준한 혈당관리는 물론 당화혈색소 수치에도 관심을 가져야 한다.
4. 식습관개선과 운동량 증가가 당뇨병 예방의 제 1원칙
전당뇨병으로 진단되는 환자들은 대부분 대사증후군을 갖고 있는데 이는 오랫동안 잘못된 식습관을 유지하면서 운동을 하지 않거나 운동량이 극히 부족한 생활을 해왔기 때문이다. 실제 환자들 대상으로 조사해 보면 아침은 거른 채, 점심과 저녁으로는 고지방, 고칼로리, 고염식 위주의 외식을 하고, 빵이나 과자, 커피믹스 같은 당분함량이 높은 과자를 많이 섭취하는가 하면, 습관적으로 음주를 자주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이처럼 불규칙한 식사를 하고 몸에 해로운 식품을 많이 섭취하는 사람일수록 바쁘거나 귀찮다는 이유로 운동은 거의 하지 않는 경향을 보인다. 그러므로 먼저 변해야 할 것은 식습관 개선 그리고 운동량의 증가다. 그러므로 이제부터는 적당한 식사량과 식사습관, 이로운 식품과 해로운 식품을 가려 먹을 뿐 아니라 규칙적인 운동의 종류와 방법, 강도까지 세세하게 배우고 익힐 필요가 있다.
이와 함께 약물치료를 병행하면 당뇨병에 대한 예방효과도 높아진다. 전당뇨환자에게 약물치료를 권하면 “아직 당뇨병도 아니라면서 왜 약을 복용하라고 하느냐”며 반발하는 환자가 적지 않다. 실제 전당뇨병 환자에게 적용되는 약물은 당뇨병환자에게 사용되는 혈당강하제와 같은 종류이므로 환자입장에서는 거부반응을 보이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하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전당뇨병 단계에서 약물치료를 병행할 경우 당뇨병에 대한 예방효과가 높다는 사실이 이미 임상연구 결과 입증되었다. 그렇다고 전당뇨병으로 진단받은 모든 환자에게 약물치료를 권유하는 것은 아니다. 당뇨병 예방에 가장 효과적인 식사요법과 운동요법을 시행해도 혈당조절이 잘 되지 않을 때에 차선책으로 고려하게 된다. 미국당뇨병학회에서도 공복혈당장애와 내당능장애가 함께 있으면서 다음 중 1개 이상의 경우에 해당할 때에 약물치료를 권하고 있다. ①나이가 60세 이상일 경우, ②비만인 경우, ③직계가족 가운데 당뇨병환자가 있는 경우, ④중성지방이 높은 경우, ⑤고밀도(HDL)-콜레스테롤 수치가 정상보다 낮은 경우, ⑥고혈압이 동반된 경우, ⑦당화혈색소 수치가 6% 이상인 경우 등이다.
맺는 말: 결론적으로 당뇨병은 아무리 좋은 약물을 처방해도 생활습관을 바꾸지 않은 한 혈당조절은 불가능한 질환이므로 음식과 활동량은 물론 정신적, 육체적 스트레스에 의해 수시로 변하는 혈당을 잘 감시하고 관리할 수 있는 사람은 환자 자신밖에 없다는 것을 알고 스스로가 주치의라는 생각을 가져야 한다. 주치의가 환자를 돌보듯 환자 스스로 자신의 몸을 돌봐야 하는 것이다. 식사조절이 어려우면 매일 식사일기를 써서라도 음식을 조절하려고 노력하고, 운동이 귀찮더라도 혈당을 떨어뜨리기 위해서는 반드시 해야 한다는 각오로 실천에 나서야 한다. 의사가 진료차트를 기록하는 것처럼, 하루의 혈당이 먹는 음식과 운동량에 따라 어떻게 변하는지를 기록해 나가다 보면 결국은 혈당이 자기가 원하는 만큼 조절되는 순간이 올 것이다.
자료 인용:
강북삼성병원 당뇨병전문센터 지음, 당뇨병희망프로젝트, 동아일보사